어른이 되는 것
내일이면 컨퍼런스라는 것 때문에 2박3일 집을 비운다. 놀러가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며칠간 프로젝트는 접어두는 셈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누가 시킨 것처럼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녁이 또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안일 중에서 걸레 빠는 게 제일 싫다. 걸레질을 시작했으면 진짜 작정한 거다.)
지금은 두번째로 세탁기를 돌리는 중이다. (이웃 여러분께는 죄송합니다만; 심술 부리는 게 아니라 나름 절박한 심정에서 전원버튼 눌렀습니다. 저도 가능하면 쨍하고 해뜬 시간에 빨래 널고 싶지요.)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집안을 다 뒤엎은 정도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주말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고오 이놈의 방구석’ 하고 울면서 쓰러지진 않을 수 있겠다. 컨퍼런스에서 돌아오면 운동도 시작해볼까 한다. 세상에 내가 운동을 결심하는 날이 드디어 왔구나… 어쨌거나 하복부 비만이 더이상 눈감아줄 수 없는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독거생활을 위해서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들어 실감한다. 돈도 필요하고 능력도 필요하고 체력도 인맥도 명예도 기타등등도 필요하겠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책임감이 먼저다. 그 책임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얼마나 작고 또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자주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생각없이 살았던 건가 하는 것도.
얼마 전에 ‘20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고, 30대는 자기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이’라는 글을 읽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그런 믿음을 행동에 옮기는 젊음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듯이, 자기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게 꼭 꼴사납고 우스꽝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해졌었다. 내가 얼마나 단단한 껍질 속을 꽉 채운 채 웅크리고 있었는지. 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제 알만큼 안다고,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왔고 그런 생각은 돌이켜보면 언제나 유치했다. 언제나 돌이켜보기만 했기 때문에 그토록 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이 앞을 내다보며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고개를 돌려 반대쪽에 펼쳐져 있는 새로운 광경을 직접 보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다.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가, 몇 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넣을 청사진이 존재하는가는 생각 외로 중요한 문제였다. 회사에서 나는 아주 많은 ‘어른’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무수히 살아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내 모습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자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다.
- 2006-09-14 3:0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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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4 3:11 am
왜 왜;; 너무 갱생한 듯이 썼나…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겠는’ 정도였단 말이야?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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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4 4:28 pm
이런 멋대가리없는 답글이 달려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알수가 없겠습니다. 그럼 이만.

무슨 말인지 못알아먹겠는 글이 등장했습니다. 제가 죽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