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7 1:04 am

엄청난 근황

회사가 홍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열렬하고 다양한 반응이 뒤따르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잠시 한 줄 쉬고)

홍대가 최근 정문을 키워가지고 지어놓은 그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건물 있지 않나. 이름하여 홍문관이라고, 홍대 홈페이지에 가보면 세계 최대 규모의 대학정문으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 필적한다;;고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 회사가 그 건물의 세 층을 쓰기로 계약을 했단다.

사실 이 소문은 지난 달 초쯤부터 돌기 시작했다. 홍대 출신으로 홍대에 취업상담회 갔다 온 애가 “우리 회사 홍대 들어가요? 학교 애들은 그렇게 알고 있던데” 라는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웬 어이없는 소리,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말이 불어나더니 진짜 간다더라, 계약서에 사인 했다더라, 어느 어느 본부가 간다더라, 이동 규모는 몇백명이라더라, 본부장들은 서로들 가려고 경쟁하고 있다더라 등등으로 자세해져갔다. 물론 나는 마음이 설렜더랬다. 홍대 정문이면 택시 기본요금 정도가 아니라 택시기사가 승차를 거부할 지도 모르는 거리 아닌가. 집에서 나와서 아무 생각 없이 일직선으로 걷다보면 노래 세 곡도 채 못 듣고 ‘출근’ 완료라니! 그래도 우리 본부가 옮겨갈 거라는 기대는 못 했다. 회사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서비스를 책임진 본부답게, 사람들 엉덩이가 무겁고, 설레발 치는 뜬소문이나 감언이설이 여기선 잘 안 먹힌다. 나는 이사가는 본부로 부서이동 시켜주면 안되겠냐고, 이거 어디 가슴 아파서 홍대 앞 지나다니겠냐고 농담을 했다. 지난 주, 본부장님이 사람들 자리를 돌아다니며 “홍대 앞으로 옮기는 거 어떻게 생각해요?” 라고 운을 띄우기 전까지는, 그게 실없는 소리였는데.

본부장님은 “거기 가면 자리도 넓고, 사무실 인테리어도 우리 맘대로 할 수 있고, 잘 생긴 남학생들도 많을 거야” 라고 했다. 본부장이 팀장단을 거치지 않고 백성들에게 직접 말을 꺼냈다는 것부터가, 심지어 ‘잘 생긴 남학생들’이라는 되도 않은 뻥을 동원했다는 것부터가, 이 설문조사의 정체를 보여주는 거다. 본부장님은 결정한 것이다.

그 즉시 본부는 발칵 뒤집혔다. 찬반이 갈렸고, 개개인의 에브리싱글데이의 동선뿐 아니라 개별 가정의 주거와 부동산이 걸린 문제인 만큼 논쟁은 격렬했다. 모두가 열띤 얼굴로 <그래서 확정은 어떻게 되었냐>고 웅성거리는 사이에 주말이 가까워오자 “이미 결정은 났다던데… 발표는 월요일에 한대요” 라는 찬물 끼얹기 식의 소문이 한 차례 돌았다. (정치가 뭐고 언론플레이가 뭔지 제대로 한 수 배웠다;) 반대의 기치를 세웠던 사람들이 “그럼 복비라도 회사에서 대줘요, 진짜 그냥은 못 가” 라고 투덜거리며 퇴근한 이후로 소란스럽게 주말이 지나가고, 월요일에 홍대행 확정이라는 소문이 다시 한 차례 돌았다.

나는 이번 이사의 <최대 수혜자>로 소문이 났다. 여러 사람이 이 동네 부동산 정보를 물어왔고 (3인 가족이 살 멀쩡한 집이 얼마 하는지, 제가 알 거라고 믿는 근거가 뭡니까 대체!) 내 방을 두고 공식 휴게실 운운하는 농담도 널리 퍼졌다. 분당에 사는, 그래서 심각하게 이사를 고려하게 된 사람들은 나보고 ‘웃고 다니지 말라’고 신경질을 냈다. 사실 그렇게 좋아 죽겠는 것만은 아닌데;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평화롭고 프라이빗한 이 동네에서, 내가 아끼는 술집과 커피숍과 골목골목에서, <회사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그럴까봐 걱정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그리고 이제 재미 없는 회식 자리에서 ‘늦어서 이만…’ 카드도 못 써먹고, 늦잠자고 지각했을 때 ‘집이 멀어서 그만…’ 카드도 못 써먹을 텐데! 그러니까 내가 수혜자인 것은 사실이고, 이런 얘기 해봤자 배부른 고민으로 들린다는 것도 알겠는데,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내가 결정하거나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문제로 부러움과 미움을 사게 되니 좀 당황스럽더구만;

실은 좀 두려웠다. ‘두렵기까지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행운이라면, 도대체 이런 규모의 행운이 어디 쉽게 오나. 1시간 걸려 출퇴근하는 회사를 다녔는데, 그 중에서 내가 속한 본부만 따로 떨어져나와 집 앞으로 옮겨와주다니, 말이 안되잖아 지금! 제가 이런 종류의 행운과 죽이 잘 맞는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이러다 무슨 일로 뒷통수를 칠려고!

두려웠다, 고 과거형으로 쓰는 이유는, 과연 두려울 만했더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과 함께 그 첫번째 증거라 할 만한 새로운 정세가 드러난 것이다. 본부 이사에 맞먹는 규모의 내부 조직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아 살떨려… 이건 아직 물 밑에 있는데, 다 떠오르면 무슨 모습일지, 완전 초긴장 상태다.

  1. 2007-11-7 11:15 am

    아이쿠야.. 정말 엄청난 근황이구나. 나도 엄청난 근황 있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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