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는 소리
아파서 쭈그리고 있는데 누가 왜 그러고 있냐고 묻길래 ‘생리통’이라고 대답했더니 이거 완전 성희롱이네, 당해보긴 또 처음이네, 하면서 열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허허 웃는다. 생리통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말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많이 봤지만, 아파서 죽을 상하고 있는 사람의 실존적 진실을 수치심으로 타자화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서른 넷의 애 아빠가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통제를 한 줌 털어넣고도 약효가 없어서 반차를 쓰고 집에 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땐 눈이 참 그림처럼 내리고 있길래, 어쩌면 바람 한 점도 없는지 그렇게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말이다, 눈보라도 출근하는 나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오후에 좌판 접고 집으로 돌아올 거였으면 눈도 오지 말고 그런 생각도 안 하는 쪽이 더 좋았을 것 같다.
대문 앞에는 여섯 권의 책이 들어있는 택배 상자가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상자를 뜯어보고 책상 위에 책을 쌓아놓고 상자에서 테이프를 뜯어내고 가지런히 접어 대문 옆에 세워놓은 다음, 다시 알라딘에 들어가 한 차례 더 질렀다. 이제는 책장에 자리도 없는데… 하고 걱정하는 척하면서 은근 우쭐해서 푸스스 웃었다. 십만원짜리 점퍼를 사고 싶어 삼일째 꿈 속에서 그걸 보면서도 결국은 책을 사는 데 돈을 쓰는 이 병든 허영심이란.
홍대 이전은 이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이유가 뭐냐면…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저 갈대숲에 속삭인 거짓말 같아서 별로 옮겨쓰고 싶지도 않다. 회사가 홍대로 옮겨와 출퇴근 시간을 쎄이브하게 되면 그걸로 내 인생에 무엇을 선물할 지 길고 긴 목록을 만들어두었는데 (심지어 담배를 줄일 생각까지 해봤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은 수평선처럼 자꾸 물러난다. 초라한 인생은 여기서 열을 내며 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