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4 12:21 am

봄봄

이틀 새 택배 상자를 여섯 개쯤 받았다. 며칠 내로 두세 개가 더 도착할 것이다. 마음이 허전했나… 이렇게? 아무런 열광도 없이 택배 상자들에 칼금을 그어 묵묵히 개봉하다 말고, 푸스스 허전하게 웃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카드를 긁어대는 스타일은 아니다. 커다란 부피의 상자 속에 담겨 온 것들이라고는 삼천원짜리 카드지갑과 천오백원짜리 냉장고 자석 따위. 허전한 마음을 채울 선물이라고 보기에는 좀…. 스스로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쉽지가 않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뤄둔 일들을 아무래도 더 미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 앞에 앉자 시험에 임박한 나이롱 수험생마냥 어질러진 방이며 정리 안 된 가계부 같은 것들 때문에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설거지나 할 심산으로 팔을 걷어붙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부엌의 냉장고—투도어 냉장고를 얻어온 후로 사용하지 않게 된 원도어 냉장고—를 베란다에다 내놓고 책장을 재배치하는 대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다음에 정신을 차렸을 땐 재작년에 사놓고 뜯어보지도 않았던 종이 칸막이를 조립해 옷장 서랍 안에 설치하고 있었고, 그 다음엔 겨우내 방구석을 뒹굴던 스웨터들을 모아 세탁소에 맡기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해서 내다버렸다. 그 와중에도 걸레질은 하기 싫어서 키친타올이 바닥날 때까지 뽑아썼지만, 세정제가 있었으면 거울도 닦았을 것 같다.

그러고 나자 방이 너무 낯설어져서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ㅅ은 내 방이 <자기가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방>이라고 했었다. ㅅ이 선택한 형용사가 ‘아름다운’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하여튼 자취방 총점 랭킹 1위였다. 내가 최근에 방에 2단 행거를 들여놨는데, 필요해서 장만한 거긴 하지만 막상 어디다 두면 좋을지 마땅치가 않다고 했더니 <그렇게 생각 없이 방의 인테리어를 망가뜨려서야 되겠냐>고 꾸짖으면서 한 말이었다; 순위권 내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면서 한참 행거를 이리 밀고 저리 밀어보았지만 딱히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 채로 힘이 빠져버렸다.

블로그를 비워놓은 세월이 결국 한 달을 채우고야 말았다. 매일같이 죄스러운 마음으로 스팸트랙백을 지우면서도 포스팅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정신 놓고 부산하게 살았다.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났고 <나의 스물아홉은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하고 눈을 굴리며 구경하다가, 아 이게 구경거리가 아니라 내 인생이지 참, 하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가 하고 있다.

봄을,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 비가 내리는데 봄비구나! 하고 생각하니 조금 감격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스팅을 해야지, 봄이 왔다고 써야지, 하고 결심했었다. 하려던 일은 결국 손도 못 댔지만 어쨌거나 새벽같이 일어났고, 종일 부지런히 몸을 놀렸고, 이렇게 블로그에 돌아왔으니… 소득이 없진 않다. 돌아오니 수줍다. 대수롭지 않게 인사해주셔도 좋겠다.

  1. 당고 2008-02-26 11:38 am

    후후- 왜 이렇게 글이 안 올라올까, 하고 기다리기도 했다는.
    봄이 와서 너무 좋아요, 진짜.

  2. 2008-02-27 12:31 am

    안녕!

  3. sh 2008-02-29 12:35 am

    봄이 오긴 온 모양이얍………………….

  4. 2008-03-5 5:08 pm

    여봐…

  5. 아슈 2008-03-19 2:07 am

    ㅎ ㅔ 이거 …야~ 원,.. 제가 무얼 좀 검색하다 여까지 ,.. 암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나중에 들러 하지요,. 그럼 이만, 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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